개인전

공간_확장 김병규展 / KIMBYUNGKYU / 金炳奎 / sculpture 2011_0824 ▶ 2011_0830

by 김병규 posted Mar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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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_확장

 

김병규展 / KIMBYUNGKYU / 金炳奎 / sculpture

 

2011_0824 ▶ 2011_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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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LED_가변설치_2011

 

 

초대일시 / 2011_0824_수요일_06:00pm

 

제3회 김병규 조각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충전되고 발산되는 에너지 수용기 ● 전시장 벽면에는 번쩍이는 금속 테를 두른 원이 거대한 눈처럼 빛난다. 원 안은 둥글게 뚫려있고, 빛이 새어 나온다. 원판 위를 가로지르는 또 다른 원들의 궤적이 다소간 정적으로 보이는 원에 활기를 부여한다. 이 궤적들에도 가느다란 빛이 새어 나온다. 원판은 5-10cm 높이의 각기 다른 높이의 돌조각이 박혀있어 거대한 동공 같은 시각의 판에 촉각성을 부여한다. 돌의 표면은 채석과 발파 작업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자연적 형태를 유지한다. 짜 맞춰진 돌들은 내부의 철분이 부식되면서 생기는 시간의 차이를 각인한다. 원이나 사각형의 판을 이루는 돌은 한 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돌 저 돌을 깍아서 퍼즐처럼 맞추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퍼즐처럼 맞추어진 돌조각들은 자연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서로 간에 맺고 있는 신비한 결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지름 170cm로, 어른 키만큼의 지름을 가지는 원은 잠재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지만, 중심은 비어있다. 또 다른 벽면에는 지름 45cm의 오석으로 된 작은 원 세 개가 부조로 배열되어 있다. 그 안쪽은 퍼즐처럼 맞춰진 다양한 높이와 질감의 돌조각이 돌 테두리 안에 있다. 돌조각들 가장자리로 흐르는 빛의 선은 불빛 그 자체보다는 빛에 일렁이는 물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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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LED_가변설치_2011

전시장 가운데는 금속 테를 두른 정육면체가 모로 세워져 있다. 다른 크기의 두 덩어리인데, 좌대는 또 다른 정육면체의 끝과 같은 형태로, 일련의 단위가 수직으로 연속되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장치는 정방형이 주는 안정감과 폐쇄성을 상쇄시킨다. 그 안은 다양한 표면과 질감, 높이를 가진 돌판들이 끼워져 있고, 다양한 강도로 조율된 빛이 새어 나온다. 전시장 조명이 어두워지면 벽과 바닥에 놓인 조각들은 자신의 물질 감을 잃고 빛의 선만 공간을 가득 채운다. 김병규의 작품에서 빛은 돌과 금속이 주는 공간성에 시간성을 야기하는 매체이다. 충전 공간을 만들어내는 빛은 타이머로 조절되는 청색, 백색의 LED 조명이다. 거기에는 서늘하지만 강한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다. 빛의 강도는 약간씩 변화하면서 마치 유기체가 숨을 쉬는 듯, 공간에 유동성을 부여한다. 조립된 돌과 금속판은 충전되고 발산되는 에너지의 수용기가 된다. 사각형이나 원형의 형태 안에 내재된 또 다른 공간을 작가는 공(空)이라고 여기고, 빈공간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자신만의 내적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장식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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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LED_가변설치_2011

김병규의 작품에서 빛은 외부로부터 조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발산된다는 점에서 신비하다. 그것은 마치 물질을 깨고 나오는 정신처럼 보인다. 빛은 뻗어 나오기보다는 고동치는 듯하다. 몇 겹의 막을 통해 깊숙한 곳으로부터 빛이 발산되는 효과를 주는 그의 작품은 근대를 지배했던 시각성의 문화와 거리를 둔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에서 빛은 진리의 은유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근대 이전의 사고에서 진리는 자연적인 발산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계몽(enlightenment)이 지배하는 근대에 와서 진리는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하는 것으로 변화된다. 진리가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 침투한다는 빛의 은유가 계몽주의에 와서 반전되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컨과 데카르트에 의해 빛의 발산력이 부정되고, '인간은 빛이요 지식이자 빛이며 세계의 영혼'이라는 말이 강조된 후, 역사가 얼마나 진정한 진보를 이루었는지는 오늘날 의문시 된다. 베이컨과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방법의 이념에서 빛은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된다. 그것은 만물을 지배하는 매체로서의 빛이 어떻게 목표가 정해져서 주사되는 조명의 광선으로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기술적인 빛인 조명이 지배하는 사회는 인간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인간으로부터 타자적인 시각을 추방한다는 것이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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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LED_175×140×14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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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LED_10×170×170cm_2011

김병규의 조각에 사용된 돌은 고흥석으로, 화강석과 같지만 색이 약간 어두워 깊은 곳으로부터 발산되는 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돌을 기본으로 했던 이전 작업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스테인레스를 사용했다. 재료는 복잡화되었지만 군더더기를 없애 더 단순하게 형태화 했다. 돌과 스테인레스의 결합은 인공적 도시와 자연의 대조 및 융합을 상징한다. 돌 표면의 자연성과 각을 맞춘 금속 표면의 구조는 차이를 가진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연적'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해 반해 인공적인 것은 '하나의 조립 물로 만 보이는 것'이다. 작업의 기본 틀은 CAD로 스케치 도면을 실사이즈로 출력하여 돌에 대고 절단한다. 돌을 선별하고 색과 높이를 조절하고 짜 맞추는 일에는 우연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대체로 계획대로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김병규의 작품은 육중한 금속과 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각각은 일정한 두께로 가공되어 있고, 그것을 조립한다. 그것들은 일련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동일한 구성원칙을 가진다. 환조든 부조든 판과 판의 관계를 통해 균형 잡힌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체계는 닫혀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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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오석, LED_10×45×45cm_2011

육면체는 꼭지 점으로 연결된 채이며, 둥근 부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이다. 각이 떨어지는 형태는 닫혀있지 않고 바둑판의 게임원리처럼 무한의 수를 담지 한다. 빛에 산란하는 듯한 물결무늬는 그의 작품이 닫혀있는 동질적인 체계가 아니라, 차이와 이질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금속 틀이 자연적 표면을 간직하는 돌을 강하게 구조화하는 작품에서, 질서 잡힌 구조의 느낌을 부여하는 것은 정사각형들의 모임이다. 수비학자들은 4가 다양성에 질서를 부여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구가 정방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안네마리 쉼멜은 [수의 신비와 마법]에서 중국인들은 그들의 전답과 가옥 그리고 마을을 모두 정방형의 원리에 따라 만들었다고 하면서, 4는 대부분 물질적 기초를 확립한 세계와 관계한다고 본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를 구성하는 4는 4방위에 대한 이상적인 상징도 포함한다. 4는 공간적 질서의 수로, 세계의 질서를 나타내는 단위이자 상징으로서의 정방형은 많은 도시들의 모델이 되곤 하였다. 김병규 의 작품에서 내부로부터 새어나와 움직이는 빛은 시간적 질서 또한 포함한다. 사각형에 기초한 입체 물에 비해 벽에 걸려 있는 원은 보다 정신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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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_공간-확장_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LED_가변설치_2011

A. 야페는 『미술과 상징』에서 플라톤은 일찍이 정신을 구형에 비유해서 설명했다고 인용한다.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이 세속적인 것, 즉 육체와 현실세계의 상징이라면, 원 또는 구를 자아개념의 상징이다. 융 심리학에서 원은 인간 대 자연의 교섭을 포함하여 모든 각도에서 보는 영혼의 총체를 상징한다. 김병규의 작품에서 중심이 비어있는 거대한 원은 마치 만다라처럼 우주와 자아에 대한 동시적인 유비, 즉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궁극적인 완전성을 표상한다. 정방형 꼭지 점을 마주하는 특이한 좌대를 가지는 입체작품과 원으로 만들어진 부조작품은 보이지 않지만, 힘의 중심이 내재되어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은 빛이다. 빛은 물질의 순수한 형태로 물질적 덩어리를 공간으로 확장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조명이 어두워질 때 하나의 장(場)으로 변모한다. 루돌프 아른하임에 의하면 장이란 힘들로 이루어진 체계의 범위를 말한다. 힘을 방출하는 중심들로부터 거리가 증가할수록 장은 빈 공간으로 환원된다. 그것은 중심과 바깥을 구별하지만, 김병규의 작품에서 중심은 여럿이다. 대형 원의 빈 중심이나 여러 궤도의 흔적이 그러하고, 작은 원에서도 산란하는 빛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이러한 중심은 마치 수레바퀴처럼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자'(아리스토텔레스)가 된다.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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