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병규 -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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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로 환원되는 도시의 정체

 

코로나 팬데믹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도시일상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오랫동안 도시는 여유가 없고 복잡하며, 냉정하고 소비와 향락 등의 부정적인 면들만 주로 부상하는 비인간적인 곳이었다. 그런가 하면 일상이란 무료하고 세속적이며, 진부하고 반복적인 삶이었다. 그랬던 도시와 일상에 대한 선입견들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도시는 북적이고 무질서한 듯하지만, 그것이 곧 활력이고 매력이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이 지루한 것 같았지만 일상이 제약을 받고 굴절될 때 우린 얼마나 삶이 답답하고 불안해지는지를 깨닫고 있다. 도시가 도시다워야 하고 일상이 일상다워야 한다는 것을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조각가 김병규, 그는 고도산업화로 인구 집중이 된 오늘의 도시를 하나의 물결 혹은 파도로 여긴다. 인파, 자동차 물결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특징을 현대도시의 정체성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티브는 높은 빌딩 위에서 내려 보거나 혹은 지하 전동차 같은 데서 많은 인파가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장면들에서 착안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도시의 일상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떠밀려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한두 번 받은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물결은 이러한 장면만을 지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무슨 열풍처럼 부는 유행이나 트렌드를 봐도 그러한 물결 같은 흐름들이 느껴진다. 3년 전 동계 올림픽을 전후로 롱패딩이라는 겨울용 외투의 유행이 한 예이다.

도시를 상징하는 것들은 역시 아찔하고도 숨 막힐 듯한 고층 빌딩 숲과 현란한 조명과 기호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하이퍼리얼의 이미지들이 도시의 탐욕을 끝없이 자극하며, 거대한 군중 속의 고독’(D. 리스먼)과 소외를 저절로 느끼곤 한다. 도시들에 대한 특징들이 수없이 많지만, 작가는 도시의 활보를 주목하고 있다. 거슬리기 어려운 거대한 흐름에 빨려들어 가면서도, 음악을 듣는다거나 리듬을 타며 걷는 것은 나름대로 도시의 속성에 순응하고, 오히려 즐기는 내공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김병규의 작업은 이렇듯 냉소적 메타포가 있는가 하면 도시의 활력과 매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관조하는 것을 암시하는 다면적인 데가 있다.

 

물론 도시는 비판적으로 혹은 냉소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많지만, 반면에 도시만의 활력과 매력, 낭만, 그 밖의 즐길만한 모티브와 컨텐츠들이 즐비하다. 이러한 메타포는 현대도시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면서 어떤 당파성으로 접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관조를 작품에 옮길 뿐이지만, 그것이 관객에 의해 비판적일 수도 있고 중성적일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두고 있다. 적어도 시각적인 조건만 가지고 볼 때는 경쾌하고 흥겨운 팝아트 분위기도 살짝 묻어난다.

도시의 익명적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인물군상들은 구조적으로 단순해 보이면서도 그렇게 간단치 않은 의미론의 사슬을 매립시켜두고 있다. 걸어가는 인물들의 옆모습을 좌우로 나누어 스텐레스스틸 프레임 실루엣의 전면은 파문(波紋), 즉 파상(波狀) 문양의 대리석 상감으로 마치 의복 같은 느낌을 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에 물결 모양의 패턴들은 움직이는 인물들의 속도감을 더욱 고조시켜주는 것이면서도 인물의 연결에 의해 거대한 인파를 암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러 타입으로 폴리싱된 스텐레스스틸의 실루엣이 마주하는 대상들을 반영하다 보니 주변의 풍경들에 의해 형상 자체가 증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하늘처럼 밝은 허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경우 더욱 그렇다. 만약 인물 실루엣이 미러 타입이 아니고 강렬한 원색이나 검정 계통의 어두운 도색이 되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랬을 때 주로 인물 실루엣의 형태와 윤곽이 뚜렷해져 돌에 새겨진 파상 패턴들의 연결성이 훨씬 약해질 것이다. 미러 타입이라는 것 자체가 차갑게도 느껴지지만 그 자체의 시각적 형태성을 약화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즉 형태적으로는 스텐레스 실루엣이 포지티브 공간인데, 시지각적으로는 주변 조건이나 이미지들이 흡수되면서 오히려 네거티브로 역전되곤 한다는 것이다.

인물의 형태는 불확실해지거나 유동적이게 되고 돌판으로 된 파상 패턴만이 포지티브가 되는, 즉 존재를 지시해주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다. 결국 각 개인들의 존재 여부보다는 거대한 군중이 형성한 하나의 흐름으로 환원되는 것이 도시의 특징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해석의 방향에서 작가 작업에 비판적 메시지가 도출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공간의 역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작업이 최근에 발표되었다.

 

최근 있었던 박사학위 청구전에서 선보인 작품들 가운데 투각형식의 원기둥이나 사각기둥 구조의 작업들이다. 여기서는 안과 밖의 역전(전도)가 이전의 실루엣 작품보다 더 분명해진다. 바깥(표면)은 이전의 환조에 가까운 후육조의 걸어가는 인물상 프레임인 스텐레스 스틸의 미러 타입으로 둥근 실루엣을 이룬다. 내부는 채색이 되어 인물들의 기술이 많이 부여돼있는 편이지만 실루엣 투각 공간을 통해서만 지각된다. 바로 여기서 안과 밖, 표면과 이면의 전도가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걸어가는 인물들의 포즈가 한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는 모습과 달리, 근작에서는 계속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무언가 돌고 도는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도시의 일상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도시를 어떤 흐름 혹은 물결로 비유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비유나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한편 사각 기둥의 경우는 순환과 반복의 컨텍스트가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거대한 빌딩을 연상시키고 있다. 도시의 상징이 마천루이며, 직장이든 주택이든 고층화된 공간을 피할 수 없는 도시인,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그러면서도 함께 해야 할 운명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맥락을 좀 더 연장시켜 보면, 시계 다이얼 공간에 익히 보았던 실루엣의 인물들이 각각의 시침(時針)처럼 부착된 투각작품 또한 작가 미의식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하는 도시인의 각박한 현실을 묘사한 듯도 하다. 이는 또한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해야 하는 일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풍경이 비관적으로 어둡게 묘사되고 있지는 않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겪어본 바 있듯이 오히려 빨리 회복되어야 할 풍경이기도 하다. 결국 상대적이고 양면적인 세계를 유연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이렇게 보면 작가의 세계관은 도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사회를 포괄한 것이며, 상대주의적, 다면적 세계라는 인식을 최근 들어 보다 생생히 시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작가의 작업에 나타난 안과 밖, 표면과 이면,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좌와 우, 주체와 객체 등의 모두가 서로 맞물려 순환하고 있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주도하거나 독재를 하는 구조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작품과 관객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작가의 의도에 따른 일방적인 작품이 아니라 관객의 참여와 상호작용에 의해 완성을 하는 인터액티브가 강조되고 있다.

관찰과 성찰의 장치로 작가는 스텐레스 미러를 두었다. 인체 옆모습 실루엣으로 돌판 상감이 이루어진 면을 앞이라 한다면 뒤엔 평면의 스텐레스 스틸 미러로 구분된다. 이렇게 보면 작가 작품은 앞과 뒤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 같지만, 의미론적으로 볼 때는 의미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 공간적 스위칭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앞이란 인체의 좌나 우일 뿐이지만, 관람자의 위치에서는 앞과 뒤가 된다. 작가 작품 전체에 흐르는 상대적 반전은 루빈의 도형보다 훨씬 복잡하고 스케일이 크다. 그러면서도 시각적 구성 이면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음미할 만한 대목들이 많다.

이렇게 보면 작가 작업의 묘미는 활기찬 도시의 일상 속에서 당당히 가슴을 펴고 활보하는 도시인의 초상을 작가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구현해내는 데 있다. 낮이나 밤이나 우리 도시의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외국인들이 부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익명적 인물들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저 세련되고 자신감에 넘쳐 있는 군상들 속에 우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 코로나블루로 인해 불안해하고 위축돼있는 오늘의 동시대인들이 그 어떤 위협이나 공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보다 긍정적인 태도와 진취적인 기상으로써 오늘의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자는 권유이기도 하다.

 

이 재 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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