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병규 -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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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조각전

이마골로기 시대의 전형성에 대하여

 

조은정(미술평론가)

 

 

21세기 초두, 번화가의 카페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지나는 젊은 여성들이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탐색하는 순간을 눈으로 만나기도 한다. 그녀들은 머리를 매만지기도 하고 스커트를 살짝 들어서 차림새를 확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창을 통해 지켜보았던 이들의 눈에 그 인물들이 개별성으로 인식되고 그래서 오래도록 유일체로 인상에 남는 일은 아주 드물다. 아마도 이들의 차림새가 유행과 관계가 깊기 때문일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실루엣만으로 판단하였을 때 그리 다르지 않은 치마 길이 심지어 작은 몸짓인 제스처까지 인물 개개를 구분하여 기억할 수 없는 이 성격을 우리는 이미지라고 뭉뚱그려 말하곤 한다.

외형의 형태로 규정된 인물들에 대한 기억은 현대 도시의 소비문화 결과이다. 대량생산과 백화점 그리고 미디어까지 가세한 현대생활의 반영인 것이다. 개별성보다는 동질성을 먼저 지각하게 되는 이 형태들은 대중적 도시문화의 산물인 팝아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구나 현대도시의 형성이 후발인 우리가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김병규의 인물들은 그러한 현대인의 이미지라는 단순하고도 우연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미디어와 이미지의 소비라는 두 축 안에서 유희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인물의 형상들은 현대 도시 생활을 상징하고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공론화한다.

밀란 쿤데라는 현대인은 이성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닌 감성적인 이미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의미에서 이마골로기(Imagologie)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불멸에서 광고와 선전을 설명하면서 시장에서 쓰이는 광고와 정치적인 용어라 할 수 있는 선전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박해받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전파하기 쉽도록 이데올로기 내용을 단순화시킨 결과를 예로 든다.

 

마르크스의 유산 전체가 그 어떤 논리적 사상체계를 형성하기는커녕 단지 일련의 이미지와 암시적인 도상들(망치를 든 채 웃고 있는 노동자, 황인과 흑인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백인, 비상하는 평화의 비둘기 등)을 이룰 뿐인 만큼, 우리는 그 이데올로기(ideologie)의 점진적이고 총체적이며 전세계적인 이마골로기(imagologie)의 면모에 대해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상이 깨진 자리에 이데올로기와 이미지가 결합된 이마골로기가 위치한다. 그리고 그것의 모습은 혼자 독백하는 진지함을 버리고 젊은이들이 말하는 방식의 경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공산주의가 낫, 망치, 노동자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환한 미소를 띤 노동자로 표현된다면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선전과 결부된 공산주의와 달리 상품의 광고와 연관되어 있음은 자명하다. 개개인이 미술작품과 연관 짓는 감상방식에서 벗어나 영화와 같이 함께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데서 탄생한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한 팝아트에서, 우리는 소비되는 이미지로서의 현실과 조우하는 것이다.

김병규는 지하철 바람에 올라가는 치맛자락을 붙드는 몸짓의 마릴린 먼로를, 짧게 머리를 자른 오드리 햅번을 보여준다. 실루엣만으로도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대중 사이에 알려진 영화와 포스터 그리고 광고라는 정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그들의 몸짓과 외모는 이제 일종의 전형으로 자리한다. 루카치는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표현불가능한 것들인 삶의 모순과 투쟁, 힘과 같은 것을 명쾌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은 전형적인 인물의 창조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돈키호테는 아닐지라도 육체 자체의 힘을 그리고 긴 머리 여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시대에 짧은 머리로 자신의 특징을 드러낸 여배우들은 이미지로 가득 차 있고 그리고 그것은 압축된 감정의 정보로 기능한다.

마릴린 먼로나 오드리 햅번 등 알려진 인물의 도상적 형상을 차용하여 소재로 삼는 방식에서 시작한 그는 카페 유리를 통해 보여진 여성의 이미지를 도상 화한다. 그들은 가끔 개를 데리고 있는데, 그 귀여움 넘치는 장면은 실은 반려견의 동반조차 부와 풍요를 상징하는 이미지의 시대, 현재를 증언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외모를 가꾸어 잘 다듬어진 한 개인의 특별성을 강조한 결과가 결국은 그들이 속한 국가와 시대를 가장 잘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 창조된 일상의 현실로부터 고립된 개인으로서 전형성을 띤다. 초인이든 속물이든 모두 공허한 역사적 진실로부터 유리된 현실에서, 탄생된 인간 모습은 그것이 또한 초인이든 속물이든 무력하고 추상적이며, 편협하고 일면적인 궁극적으로 비인간적인 형상이라고 한 루카치의 지적처럼 일상에서 우리가 통칭 속물이라고 치부하기 쉬운 존재인 지나치게 외모를 가꾼 여성의 이미지는 그렇게 전형성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물론 그가 선택한 여성의 모습은 남성과 구분하여 차별적으로 선택된 성별 구분에 의한 생리적인 여성은 아니다. 그녀들은 작가의 경험에서 발원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실루엣으로 처리하여가는 과정에서 보다 명확한 의도 전달을 위해 선택된 이미지일뿐이다. 그것은 여성이나 남성의 사회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대명사로 작동한다. 그것은 착용한 의상의 실루엣이 여성의 경우가 더 다양한 덕에 선택된 것일 뿐이다. 그 선택의 조건에는 바람에 반응하는 여성의 머리칼과 치마도 포함된다. 외부조건에 반응하는 인간의 몸짓을 극대화하기에 적절한 바람(Wind)은 거부할 수도, 수용할 수도 있는 조건이다. 영화 속에서 마릴린 먼로는 지하철의 속도에 의해 생성된 바람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현대 도시에서의 소외를 극복하는 한 방안이기도 했다. 그 유사한 행위를 보여주는 여성 실루엣은 그러한 문명의 수용을, 그리고 스치듯 지나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는 여성의 실루엣은 자연조차 연출그래서 작가는 제목에 Play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로 동원한 현대인의 삶을 드러낸다. 현대 도시생활에서 인간의 외부를 둘러싼 모든 것은 자연과 비자연 모두 경계가 없는 삶의 조건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이미지로 사용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이들은 형태는 금속과 돌이라는 오래된 조각의 재료로서 견고함, 영속적인, 전통적인 의미를 지닌 두 가지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금속 중에서 스테인리스스틸은 현대문명의 산물이다. 반짝임과 견고함 그리고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는 녹을 거부하는 속성은 영속을 추구하는 조각의 욕망을 담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사용된 오석이나 사암 등 색깔 있는 돌들은 가장 오래된 조각의 재료이면서도 변하지 않는 색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영속성에 접근해 있다. 인물 형상들의 외곽은 견고한 금속인 스테인리스스틸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조차 퍼즐조각처럼 금속의 틀 안에서 맞추어 구성된다. 전통적이며 육중하고 무거운 재료이기도 한 이들이 구현한 것은 경망스럽기까지 한 가벼운 일상의 형태이다. 속도와 변화를 의미하는 현대인의 삶을 가장 전통적인 재료로 구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변화란 새로운 발전의 의미가 아니라 이 장에서 저 장으로의 이동이라는 의미로 변화하였다는 밀란 쿤데라의 지적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금속과 돌로 짜맞추어진 형태는 실루엣을 기본으로 한 형태 덕에 평면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재료가 갖는 특성을 극대화한 두께를 지니고 있어 3차원의 공간에 존재한다. 환조와 부조 혹은 드로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그저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장치는 이미지의 주체가 되지 못한 현대인, 그 진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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